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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이 최우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 경영 노하우 2022-05-14 14:02
"나라가 죽고 사는 기로에 있다.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 한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이자 아워홈을 설립한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구 회장은 지난 1930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군 복무 시절 6·25 전쟁에 참전했고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을 받았다.
휴전 후 미국으로 유학한 그는 디파이언스 대학교(Defiance College) 상경학과를 졸업했으며,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 일선에서 뛰었다. 1973년 호텔신라 사장,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사장, 1987년 LG반도체 회장, 1995년 LG건설 회장 등을 역임했다.
럭키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사업보국(事業報國)' 일념 하나로 당시 세계 석유화학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고자 기술개발에 주력했다.
구 회장은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라며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소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던 만큼 구 회장이 걸어온 길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럭키는 지난 1981년 '국민치약'이라는 수식과 함께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고, 1983년에는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PBT를 만들어 한국 화학산업의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으며,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현재 LG의 근간이 된 주요사업의 시작과 중심에는 늘 구 회장이 있었다.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한 건 지난 2000년이다. 아워홈은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했고, 구 회장이 이끄는 20여년 간 매출이 8배 이상 성장했다. 아워홈의 매출은 지난 2000년 2125억원에서 지난해 1조7480억원 규모로 늘어났다.
사업 포트폴리오 역시 다양해졌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변모했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역량에 비해 사업이 너무 작은 규모였던 까닭이다. 구 회장은 그런 사업부를 거대 조직의 어떤 도움도 없이 2조원에 가까운 지금의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으로 성장시켰다.
기술력에 주목하는 등 기업인으로서의 경영 철학도 있었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도 있었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에는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을 벌었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에는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에 불만이 있었다.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직접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특히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혜안이 있었다는 평이 나온다. 구 회장은 단체급식사업도 화학, 전자와 같이 자신이 몸담았던 첨단산업분야에 못지않은 R&D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아워홈은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지난 2000년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당시 임원들은 "단체급식 회사가 대량 생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만5000여 건에 달하는 레시피를 개발했다. 현재 연구원 100여명이 매년 약 300가지의 신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또 업계 최초 노로바이러스 조사기관,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농산물안전성검사기관 등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하는 등 국내 안전 먹거리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구 회장은 생산·물류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섰다. 2000년대 초 그는 미래 식음서비스 산업에서 생산과 물류시스템이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70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산·물류센터 부지를 찾아 직접 전국을 돌았다.
현재 아워홈은 9개 생산시설과 14개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다. 전국 어디든 1시간 이내에 신선한 식품을 제공할 만큼 업계 최다 규모다. 콜드체인 시스템이 물류 핵심 요소로 대두되기 전부터 신선물류시스템을 구축한 것. 지난 2016년에는 동종 업계 최초로 자동화 식자재 분류 기능을 갖춘 동서울물류센터를 오픈, 업계 최고 수준의 물류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해외진출도 빨랐다. 아워홈은 지난 2010년 중국에서 단체급식사업을 시작했고, 2014년에는 청도에 식품공장을 구축했다. 다양한 중국 식재료를 원활히 수급, 직접 생산해 단체급식 질을 올리기 위함이다.
지난 2017년에는 베트남 하이퐁 법인 설립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고, 2018년에는 M&A를 통해 기내식 업체 HACOR를 인수하며 기내식 사업에도 진출했다. HACOR는 현재 LA국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기내식을 납품하고 있다. 북미 시장 단체급식과 식품사업 확대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미국 공공기관 식음서비스 운영권을 수주했다. 미국우정청(USPS)과 구내식당 위탁 운영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폴란드에도 법인을 설립하는 등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구 회장은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아워홈을 경영했다. 무엇보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뒀다. 1980년대 럭키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세상에 내놓았던 '드봉'과 '페리오' 등 생활 브랜드 역시 '국민의 건강한 삶'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했다.
와병에 들기 전 구 회장은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커요.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아요.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래요.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합니다"라며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어요.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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