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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더 일해야하는 100세 시대…달라진 인생모델 맞춰 재교육…금융소득 키울 정책지원 절실 2021-11-25 20:09
◆ 매경 포커스 ◆
20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아쉬움이 밀려온다. 너무 근시안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낮아 보이며,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있기에 대안들도 신통치 않아 보인다. 한마디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최악의 출산율을 꼽고 싶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역대 최저다. 이민정책이나 여성 경제활동비율을 늘려 낮은 출산율의 위기 국면을 어느 정도 타개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은 될 수 없다.
잠재경제성장률은 어떤가. 200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잠재경제성장률은 4.7%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2.5%로 급락했고 올해는 2.0%(대한상의)로 하락할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생산가능인구까지 줄어들기 시작했다.
2030세대 가운데 상당수가 '니트족(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으로 무기력하게 청춘을 허송세월하고 있고, 한때 산업 역군이었던 5060세대는 조기 은퇴 이후 일용직 근로자로 생활비를 조달하거나 아예 소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인생 후반전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고, 기대수명은 자랑할 만한 수준이지만 건강기대수명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미국 버클리대와 독일 막스플랑크 인구연구소가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2007년 출생아(선진국 기준) 가운데 50% 이상이 107세 이상 생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 수준의 발달을 감안하면 현재 우리나라 10대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100세 이상을 산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대수명 80세 시대에 맞춰진 국가경영전략을 100세 시대에 걸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과연 어떤 것부터 대전환을 해야 할까. 이 대목에서 '100세 인생(The 100-Year Life)'의 공동 저자인 린다 그래튼 교수(영국 런던경영대학원)의 주장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그녀는 인생 80세 시대에선 '3단계 인생모델(학습-일-은퇴)'이 통했지만, 100세 시대엔 '다단계 인생모델(학습-일-재교육-일-은퇴)'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100세 시대에 걸맞은 국가경영전략의 대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단편적인 처방전으로는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초연결 사회'에 걸맞게 국가경영전략도 '초연결 행정'이 돼야 한다. 한 부처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대통령 주재 8개 위원회(정책기획, 저출산고령사회,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자치분권, 국가균형발전, 국가교육, 농어업농어촌특별)가 있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8개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정부 부처 장관은 당연직이고, 부위원장은 대부분 민간위원이 맡고 있다. 겉돌게 마련이고, 실행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롭게 '100세 시대 국가경영전략 대전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위원장은 대통령이 맡더라도 실행 책임자는 국무총리로 격상해야 한다. 그래야만 '초연결 행정'이 작동될 수 있다. 국회 여야 정책위의장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법 제·개정을 통해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기업들도 일정 부문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이게 'ESG 파이코노믹스' 저자인 알렉스 에드먼스 영국 런던경영대학원 교수가 말하는 '파이(Pie)', 즉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일환이고,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물론 사회책임 실천과 관련해서는 개인도 예외일 수 없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출생률 제고가 시급하다.
출생률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기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노력한다고 해서 곧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경영전략의 대전환이란 의지가 있다면 어렵더라도 출생률 제고를 국정과제로 삼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도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산 대책과 관련된 밑그림을 짜고, 경제부총리 주도의 '인구정책 TF'를 가동해 왔다.
이 같은 노력에도 출생률은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토론회에서 "저출산 지진과 고령화 쓰나미가 겹쳐 이른바 인구재난 상황"이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출산은커녕 신혼 가정을 꾸미기도 힘들게 됐다. 집이 없는 신혼 가정은 불가능하다. '초연결 행정'이 아니고는 해결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금융소득 늘리기에 역점을 둬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가계가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자산소득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계자산은 부동산에 편중돼 있고, 금융자산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70%)과 일본(64%)에 비하면 금융소득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는 금융소득을 늘리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1가구 2주택 또는 상가 투자로 월세 수입을 올려 은퇴 이후 넉넉한 노후를 살 계획을 세워 왔지만, 부동산 규제로 앞으로는 이런 자산소득 창출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전망이다.
요즘 주식투자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배당 수입을 목적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기 배당을 하는 기업은 6개에 불과하다. 미국은 S&P500 기업 가운데 80%가 분기 배당을 실시하기에 매월 배당 수입을 통해 생활비 조달이 가능한 구조다. 우리나라는 분기 배당을 하더라도 분기 말(3·6·9·12월)에 해야 하지만, 미국은 1월(필립모리스 등)이나 2월(AT&T 등)에도 배당을 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1월에도 분기 배당을 하려면 자본시장법(165조 12항)이 개정돼야 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금융교육 확대를 통해 가계 금융소득을 늘릴 수 있는 기반 조성도 절실하다. 선진국들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대부분 중·고교에서 의무 금융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금융문맹 퇴치위원회'라도 설치해야 한다.
셋째, '다단계 인생모델'에 맞춰 정책을 펴야 한다.
80세 시대에선 '3단계 인생모델'이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에 비해 20년을 더 생활해야 하는 100세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다단계 인생모델'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는 교육 개혁을 통해 산업계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고, 기업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실업자들에게 양질의 재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60세 이상의 시니어들에게도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재교육이 절실한데, 이때 산학연계 재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산업계와 머리를 맞대서 직장인을 위한 '갭 이어(Gap Year·진로탐색 기간)' 제도를 도입해볼 만하고, 퇴직자에게만 제공하는 '전직 지원 서비스'를 모든 근로자에게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자기계발을 독려하기 위해 미국의 '평생교육계좌법(Lifelong Learning Purpose Account)'과 같은 제도 도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를 위한 높은 수준의 평생교육을 위해서는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U3A(시니어평생교육 프로그램)'를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에서 나름 주목받고 있는 '대학 은퇴촌' 모델을 국내 지방 대학들이 시도해 보면 어떨까. 미국에서는 100여 개 대학들이 캠퍼스 내부나 근교에 은퇴촌을 만들어 시니어들이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멘토링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대학은 학생들에게 시니어를 돌볼 수 있도록 인턴제도를 운용하기도 한다. 모범적인 곳이 '라젤빌리지(Lasell Village)'를 운영하는 미국 보스턴 소재 라젤대학이다.
넷째, 건강기대수명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3세로 최장수 국가인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건강기대수명은 64.4세로 형편없이 낮은 편이다. 그만큼 장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60세(2018년)를 기준으로 했을 때 기대수명과 주관적 건강수명의 차이는 11년에 달해 오랜 기간 병치레를 한다는 의미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주관적 건강기대여명비율(건강여명/기대여명, 통계청)'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9%포인트 정도 낮은 수준이다.
기업도 직원들의 건강 돌보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업들이 펼치는 ESG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을 평가할 때 근로자들에게 건강관리 서비스와 '갭 이어'를 통한 재교육 제공 여부 등을 포함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정부 지원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다섯째, 신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
'큰 정부'나 '작은 정부'의 시각에서 벗어나 '스마트 정부'가 돼야 한다.
'초연결 행정'으로 지속가능 성장과 잠재성장력을 끌어올리고,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이 십분 발휘되는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스마트 정부의 역할이다.
신산업정책의 핵심 과제로 전 세계 공급망 첨단화와 총요소생산성 제고를 꼽고 싶다. 전 세계 공급망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해졌다. 산업별로 해외 공급망의 중요도를 정해 놓고, 소위 스트레스 테스트(위기상황 분석)를 통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스마트 정부는 총요소생산성 제고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을 하려면 생산요소 투입량을 늘리거나 생산요소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진입 규제를 완화하고, 좀비기업을 퇴출해야 하며, 노동유연성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생태계를 만들어 줘야만 생산요소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옥죄는 규제정책으로는 더 이상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장·금융감독원 옴부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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