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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영세中企 대출거래 숨통 틔운다 2017-10-12 20:03
금융위, 취약계층 대출 의무화
대출이나 투자 등 금융 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온 지방이나 중소·영세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미국이 1970년대 후반부터 제정·보완해 온 지역재투자법(CRA)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미국은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소외 지역에 대해 금융 차별을 뜻하는 '레드라이닝(redlining·지도상 저소득층 동네에 빨간 줄을 그어 금융 지원 제한)'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2월 말까지 이 같은 내용의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로 하고 이달 초 연구용역 기관 선정에 착수했다. 일부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방 점포 철수 움직임과 장애인의 금융거래 거절 사례 등 '한국판 레드라이닝'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금융 차별을 없애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선 셈이다. 지역금융을 둘러싼 제도 전반을 뜯어고쳐 수도권 이외 지역의 중소·영세 상공인, 농어업인 등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강화하고 지역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이 같은 시도는 새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인 최종구 위원장이 내건 생산적 금융·포용적 금융 기치와도 맞물린다.
국내의 경우 상호저축은행 등 일부 업권에서 영업 구역 내 대출의무비율을 정하고 있을 뿐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 전반에 대한 지역 밀착형 금융 활성화 방안은 부족하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금융위는 국내 지역금융 관련 제도·규제 현황과 해외의 지역금융 규율 사례 분석을 거쳐 국내 지역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선 경제성장 기반이 취약한 지방 중소도시나 농어촌에 대한 은행 등의 여·수신 비율 의무화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도서·산간 지역은 업력이 오래된 대규모 사업장이 적어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보유 자산도 대부분 전답이나 임야 형태라 담보대출 실행 가능성과 대출 규모가 도시 지역에 비해 현저히 작다. 단위농협, 수협,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권에서 일부 대출에 나서고 있지만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다.
취약계층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 이에 대한 평가·감독 방안,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제공 방안도 연구 대상이다. 최근 씨티은행의 점포 수 감축으로 이슈화된 지역 내 점포 등 금융 접근성 강화 방안도 마련될 예정이다. 지역금융과 관련한 각종 제도 간 역할 조정 방안도 검토된다.
미국에서는 시카고 남서부 지역 등에 대한 은행들의 레드라이닝 논란이 불거지면서 1968년 공정대부법(은행의 지역 차별을 금지), 1975년 주택담보대출공개법(지역별 주택담보대출 실적 공개) 등 차별 금지 입법에 나섰지만 제재 수단이 없는 선언적인 제도였다. 하지만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7년 12월 지역재투자법이 제정되면서 은행과 저축금융기관들에 영업 구역 내 모든 계층에 대한 여·수신 수요 등을 적절히 충족해야 할 의무가 부과됐다. 금융회사들이 위반할 경우 직접적인 처벌은 없었지만 향후 점포를 늘리거나 또 다른 금융기관을 인수할 때 금융당국이 이 같은 지역재투자법 준수 여부를 심사함으로써 간접적인 인센티브도 마련됐다. 미국의 지역재투자법은 2008년까지 잇따라 개정되면서 벌칙과 인센티브가 강화된 바 있다.
■ <용어 설명>
▷ 레드라이닝(redlining) : 1935년부터 미국 주택담보대출기관이 흑인들이 많이 사는 낙후 도심 지역을 지도상에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대출을 제한하거나 대출 금리를 높이는 데서 유래된 용어. 은행발(發) 빈곤의 악순환을 뜻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통용된다.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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