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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 걸릴라, 손배소 당할라 … 이사 충실의무 확대땐 '이중고' 2024-06-11 20:05

배임죄 공포에 재계가 떨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까지 법제화되면 이사회의 투자의사 결정은 사실상 올스톱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배임죄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까지 적용돼 가중 처벌되는 등 형량이 무거울 뿐 아니라 범죄 구성 요건도 포괄적이어서 기업인들을 옥죄고 있다"며 "한국은 배임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례가 많아 기업인들이 경영 판단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 전체로 확대되면 배임죄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주주들이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배임죄 처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사들은 소송에 대비해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런데 형법상 배임죄는 임원배상책임보험 보장 범위 밖이다.
대기업 사외이사 A교수는 "배임죄에 주주에 대한 책임까지 강화되면 의사결정은 지연·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삼성 반도체나 현대가 자동차·조선사업에 진출했던 것 같은 모험가적 기업가정신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주주책임 강화로 배임 이슈가 커지면 이사회 구성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며 "특히 외부 전문가들의 사외이사 기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밸류업에서 중요한 것이 우수 인재인데, 배임죄와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는 밸류업과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재계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형법에 배임죄를 명문화한 반면 미국은 사기죄로 처벌하거나 개인 간 손해배상 방식으로 배임 이슈를 해결하고 있다. 특히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에 회사법상 특별배임 규정뿐 아니라 특경법상 배임죄 규정까지 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특경법은 업무상 배임죄에 가중 규정되는 역할을 하며, 50억원 이상 범죄에 대해서는 살인죄(5년 이상 징역)와 동일한 형량을 적용한다.
한국의 배임죄는 또 광범위한 처벌 대상, 막연한 죄목, 쉬운 고발에 따른 빈번한 기소, 높은 무죄율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속한 경영 판단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배임죄 리스크가 기업가정신을 훼손하는 족쇄로 작용한다"며 "경영활동은 항시 손해 발생 위험이 있는 만큼 기업인들이 배임 리스크를 덜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계는 '경영 판단 원칙'을 회사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고 광범위한 배임죄 규정 적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경영 판단 원칙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의 의무를 다해 경영상 결정을 내렸을 때에는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이 본부장은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위험'만 있어도 행위를 처벌하는 배임죄 때문에 기업인들은 모험적인 투자를 기피하고 보수적인 경영에만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영 판단 원칙을 형법이 아닌 상법 회사편에 명문화해 기업인들의 경영행위에 대한 균형 있는 사법적 판단을 유도하고 기업가정신을 제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법원은 기업인의 경영 판단에 대해 법적 판단을 엄격히 적용해 경영자가 법적 리스크를 빠져나갈 여지가 좁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의 '대법원 경영 판단의 원칙 재판 분석'에 따르면 2011~2021년 '경영 판단 원칙'을 언급한 대법원 판례는 총 89건(형사 56건, 민사 33건)에 불과하다. 판례 중 부인은 55건(61.8%)에 달한다. 형사재판은 경영 판단 원칙에 더욱 엄격해 부인(42건)은 인정(14건)의 3배 수준이다.
한국 법원은 경영 판단 원칙 인용에 소극적이고 입증 책임도 이사가 부담해야 하지만 미국 법원은 '경영 판단 추정 원칙'을 통해 기업인의 경영 판단을 존중하고 있다.
[정승환 재계전문기자 /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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