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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매수 발표 전날 주가 폭등…‘내부자들’ 사라져야 밸류업 성공한다 [데스크칼럼] 2024-06-11 17:24
아직도 만연한 내부정보 유출
증시와 자본시장 신뢰 흔들어
당국 범죄 성립요건 완화 통해
불공정 거래에 더 엄한 처벌을

요가복 업계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룰루레몬. 나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는 올해들어 주가가 39% 하락했다. 하지만 이 회사가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 폐장 후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하자 시간외 거래에서 10% 가까이 급등했다.
뉴욕 시장에서 실적 발표 시즌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반대로 넷플릭스 메타 등 대형주도 실적이 시장 예상을 밑돌 때는 시간 외에서 10~20%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 놀란 것이 아니다. 이같은 호재성, 악재성 정보가 공시하기 전까지 보안이 지켜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신뢰’라는 가치를 지키려는 사회적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호재성 공시가 있으면 미리 정보가 새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최근 공개매수 대상이 된 종목들의 발표 직전 주가 흐름은 누가봐도 수상한 것이 많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지난 4월말 공개매수를 선언한 ‘다나와’ 운영사 커넥트웨이브가 대표적이다. 공개매수 계획이 발표되기 전 거래일에 주가는 18.6% 폭등했고, 거래량은 전일대비 40.8배나 많았다.
락앤락 주가는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공개매수를 발표하기 전날 11.6% 상승했다.
시작도 전에 오른 주가 때문에 기존 주주들은 실망했고, 어피너티는 지난 5일까지 공개매수 기간 연장에 나섰지만 결국 상장폐지 요건을 위한 지분 매입에 실패했다.
쌍용C&E 주식 거래량은 한앤컴퍼니가 지난 2월 공개매수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 2거래일에 거래량이 평소대비 각각 8배, 5배 이상 증가하며 주가가 13% 치솟았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서 누군가는 두둑한 돈을 챙겼음이 분명하다. 모든 거래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는 피눈물이 되는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런 일은 ‘내부자’의 조력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 3년간 금감원이 절발·조치한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 56건(혐의자 170명) 중 악재성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 손실을 회피한 건은 15건이었다. 혐의자 25명은 대주주 및 임원 등이었다.
금융감독원 등 감독당국의 자본시장 파수꾼 지위는 이런 불법적 행위에 더 엄중하게 나서야 유지된다.
미공개 정보 이용과 함께 자본시장 3대 불공정거래로 불리는 부정거래, 시세조종 접수 사건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의 담당 인력 규모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렇다보니 범죄시점부터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까지 2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 검찰 송치, 법원 결정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흘러간다.
감독기관 뿐 아니라 사법당국도 이런 문제를 좀 더 엄격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미공개 정보 이용시 형량은 최대 징역 15년형까지 부과가 가능하고 이익이나 손실을 회피한 금액의 최대 5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등 솜방망이 처벌이 많다. 까다로운 범죄 성립 요건 때문에 처벌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요하다면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에서 이런 범죄에 대해 종신형까지 선고하는 것은 미국이 유지되는 근간인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처벌은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지난 2008년 헤지펀드에 골드만삭스 내부 정보를 흘려줘 기소된 라자트 굽타 전 맥킨지 회장은 연방검찰에 기소돼 실형을 살았다.
정부가 앞장서 한국 자본시장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밸류업’ 정책 논의가 한창이다. 이런 정책이 사상누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뢰’라는 기초 토양이 필요하다.
그 토양에는 ‘내부자들’이 절대 발을 디딜 수 없도록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용범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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