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대박 난다는 말에 은퇴자금 5천만원 털었다" 시골까지 파고든 코인광풍 2021-05-18 16:50
◆ 코인 투기 광풍 ◆
17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홍문동의 한 마을. 쏟아지는 봄비 속에서 만난 지역 주민 한경자 씨(가명·64)는 최근 가상화폐에 투자한 남편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자고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남편과 남편 친구가 지난 3월 은퇴자금까지 털어 가상화폐에 약 5000만원을 투자했다"며 "그중 상당액은 비트코인처럼 잘 알려진 코인이 아니라 최근 동네에서 사업설명회를 했다는 회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원금도 못 찾을 것 같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인근 여흥동에서 만난 박삼호 씨(가명·68)도 가상화폐 때문에 말 못할 사정에 놓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상화폐에 투자를 하면 '돈이 복사된다'는 말을 듣고 지난달 초 가족 몰래 2000만원을 동네 지인이 알려준 기업에 투자했는데, 얼마 전 뉴스에서 사기 사례로 나온 것과 비슷해 경찰 신고를 고민 중"이라며 "코인이 뭔지도 잘 모르는 촌사람이 애먼 곳에 투자를 했다가 큰돈을 잃게 생겼다"고 낙담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높아지는 가운데 관련 정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농촌 지역에까지 가상화폐 관련 투자를 유혹하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피해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인접한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실물 전단지가 유포되는 사례도 확인됐다.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 용인을 비롯한 광주, 이천, 남양주, 여주 등 수도권과 인접한 도농 지역에서는 '파일코인 채굴기 본인 소유 스페셜 프로모션' 등의 문구를 포함한 전단지가 최근 유포되고 있다.
전단지에는 '채굴량의 80% 투자자, 20% 운영관리비로 구분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전단지 뒷면에는 미국의 유명 투자가 '워런 버핏'과 중국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회장의 발언인 것처럼 작성된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첨부돼 있었다.
해당 업체는 암호화폐 채굴 장비를 판매하는 곳으로, 현재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안양, 인천 등에 지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관계자는 "파일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다른 코인처럼 개인이 채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며 "투자금을 지불하면 업체 명의로 파일코인 재단에 담보비를 제공하고 채굴 과정에 드는 비용 지불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 관계자는 "현재 채굴기 한 대 가격은 615만원 선"이라며 "한 달 동안 채굴기를 통해 채굴할 수 있는 코인은 구매할 경우 3~4개, 임대할 경우 6~7개 안팎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굴기의 핵심이 되는 컴퓨터 비용은 90만원 전후지만, 동반하는 운영비를 고려해 기기 가격이 정해진다"고 덧붙였다.
해당 업체는 또 일찍 사업을 시작할수록 후원수당을 지급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사업에 가입할 것을 설득했다. 업체 관계자는 "아직 전국 사업자가 200명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금 가입하면 나중에 해당 지역에서 후발주자로 시작하는 업주로부터 5%의 수수료를 받는 마케팅 비용에서 이점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주 = 이진한 기자]
머스크에 뒤통수 맞고, 유튜버에 낚이고…코인투자자 피눈물

머스크, 오락가락 발언에
가상화폐 시장 통째로 출렁

"5개월만에 1억 벌게 해줄게"
코인 투자 권유 유튜버 급증
투자금 끌어모은 후 '먹튀'
가상화폐가 국내외에서 인플루언서들의 말 한마디에 10% 이상 폭락하거나 돈을 노린 유튜버의 사기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자산으로서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각국 당국이 가상화폐를 정식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면서 법망이 없는 허점이 사기에 이용되고 있는 모양새다.
16일(현지시간) 오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테슬라의 비트코인을 전량 매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트위터를 올린 뒤 비트코인이 10% 이상 급락했다. 가상화폐를 분석하는 트위터 계정 '크립토웨일'은 이날 트위터에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다음 분기에 테슬라가 비트코인 보유분을 처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책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정말이다(indeed)"라는 댓글을 달았다.
시장이 이 트윗을 테슬라가 나머지 비트코인 보유분을 팔았거나 팔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가상화폐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머스크 트윗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10% 넘게 빠지며 개당 4만2000달러 선에 거래됐다. 지난 4월 6만3000달러로 최고치를 찍은 이후 30%가량 떨어졌고 3개월래 최저 수준이다.
대장 격인 비트코인 매도세가 이어지자 가상화폐 투자 심리가 급격히 악화하며 이날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과 도지코인의 가격도 12%, 8%씩 하락했다. 머스크가 또다시 트윗 하나로 가상화폐에 찬물을 끼얹자 그를 향한 비난이 터져나왔다. "사기꾼" "위선자" 같은 날이 선 표현을 포함해 "당신을 혁신가로 생각했지만 그저 자아병증 환자에 불과하다" 같은 실망 섞인 반응도 있었다.
비난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자 머스크는 이날 밤 또 트윗에서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팔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트윗이 나온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하락폭을 소폭 만회하며 4만4000달러대에 거래됐다.
국내에서는 유튜버들이 많게는 수백 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홍보하는 영상을 통해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사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는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바이코리아'가 유튜브에 실제 수익 영상이라며 올린 뒤 갑자기 거래소 문을 닫고 투자금을 들고 잠적한 사건이다.
해당 유튜브에 등장한 유튜버들은 1000만원만 있어도 5개월 만에 1억원을 만들어 준다고 홍보한 바 있다. 해당 유튜버는 30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계좌 잔액을 보여주며 "여러분 인생에서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 이 외 '3개월 만에 무려 1억4천?' '클릭 한번으로 28년 일할 돈 벌어버린 나만의 비밀'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유튜브 영상들이 즐비했다. 이 거래소 가입자 약 10만명 중 확인된 피해자만 1000여 명에 이르고 피해금액은 10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된다.
문제는 미국의 머스크나 한국의 유튜버들 사례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코인 시세조작 시도가 발생해도 관련자를 처벌할 금융규제가 없다는 점이다. 양국의 자본시장법에 가상화폐 관련 시세조종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식시장을 규율하는 증권거래소법이 가상화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증권거래소법 섹션 9(a)(2) 조항은 일련의 거래를 통해 특정 '증권'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려는 목적으로 타인을 끌어들여 매매를 유도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증권에만 적용된다.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개혁 및 소비자 보호법이 금융 소비자에 대한 보호를 광범위하게 담고 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규제와 관련해 김범준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한국 자본시장법은 시세조종 행위를 위장 거래에 의한 시세조종 등으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지만 가상화폐 거래 관련 시세조종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일반 피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4월 6일부터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법은 제176조를 통해 '시세조종행위 등'을 금지하고 위반 시 법적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규정했지만 이는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 거래에만 적용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소비자보호 센터장은 별도의 법안을 마련해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가상자산업 관련 법안에 시행령 등을 둬 시세조종에 관한 시장 감시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면서 "특히 내부자 거래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가상화폐 소비자 보호에 대한 움직임은 국회에서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거래할 때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거나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 시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가상자산 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의할 계획이다.
[윤원섭 기자 / 김인오 기자 / 진영화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