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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한미약품…주총 줄줄이 `빨간불` 2019-03-13 00:04
국민연금이 결국 의결권 행사 방향 사전 공개를 단행했다. 의결권에 대해 찬반 의사를 밝히는 것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부터 해왔던 주주 활동이지만 그동안은 결과만 공개되면서 사후 조치 성격이 강했다.
국민연금이 다른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개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주주총회를 앞두고 여론전의 선봉에 서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12일 국민연금이 공개한 23개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분석한 결과 반대표는 이사와 감사 선임 등에 집중됐다. 현대건설 신세계 농심 서흥 현대위아 한미약품 등 6개사가 사외이사 선임에서 반대표를 받았고, 이 중 현대건설 신세계 농심 한미약품은 감사 선임에서도 반대표에 직면했다.
국민연금은 14일 주주총회를 여는 LG하우시스의 정관 변경 건에 대해서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하면서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 직책을 정당한 사유 없이 합칠 수 있게 했다"며 반대 사유를 설명했다. 이사회 의장과 CEO 간 구분을 명확히 하라는 요구인 셈이다.
반면 그동안 국민연금이 집중해 왔던 배당과 관련한 의안 반대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주요 상장사 배당정책이 부재하거나 저배당 상장사로 판단되면 재무제표 승인 안건과 연계해 반대표를 행사한다. 지난해에는 상장사 10곳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고, 이 중 남양유업현대그린푸드는 저배당 상장사로 공개 지목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의결권에 대한 찬반 의사를 사후에 밝히는 것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부터 해왔던 주주활동이다. 한진칼에 오너 일가를 견제할 정관 변경을 요구하거나 남양유업에 배당정책 관련 위원회 설치를 요구한 국민연금의 최근 주주활동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의결권 사전 공시는 다수 상장사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활동인 만큼 주요 상장사에 미치는 여파가 훨씬 더 크다는 평가다.
이 같은 이유에서 당초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공개하는 안을 논의할 때 민간 전문가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수탁자책임위원은 "국민연금이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한쪽 방향으로 의결권 행사가 쏠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며 "주요 시가총액 상위 대기업이 두루 해당하는 만큼 시장에 미칠 여파가 큰데도 시민단체 추천 위원들의 강한 요구로 이 같은 내용이 결정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의결권 행사 방향 사전 공시는 국민연금이 주요 상장사 의안에 대한 견해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반대한 상장사 주총 안건이 실제 부결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국민연금이 사전에 기관투자가들을 우군으로 확보해 주총 의결권 대결을 유리하게 끌어가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이에 따라 총수의 임원 임기 만료를 앞둔 상장사나 외국계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와 표 대결이 예상되는 상장사는 부담이 커지게 됐다. 올해 기업 총수가 임원 임기 만료를 앞둔 곳은 현대자동차 롯데케미칼 금호산업 등이 꼽힌다. 모두 3월 주주총회 전후로 임기가 끝난다.
한진칼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 역시 초미의 관심사다. 한진칼은 국민연금 지분이 10% 미만인 상장사로 의결권 행사 방향 사전 공개 대상 기업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수탁자책임위원회가 결정한 안건에 대해서는 행사 방향을 미리 공개할 수도 있다.
실제 강성부펀드(KGCI)와 한진칼이 주주총회를 두고 법적 공방 등 날선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도 물밑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 결정 프로세스에 따르면 내부 투자위원회가 주주총회 전 안건을 검토하고 이를 결정한다. 투자위원회가 결정이 곤란한 사안은 전문위에 자문을 맡긴다. 전문위원 3인 이상이 모이면 투자위 요청 없이 전문위에 안건을 회부할 수 있고 의안 행사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데 전문위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요구가 이뤄지고 있다.
[김제림 기자 / 유준호 기자 /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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