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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에 높은 점수…북핵·가계빚 악화땐 하향 경고 2017-10-12 23:45
◆ 韓 신용등급 AA- 방어 성공 ◆
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에도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12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거나 전망을 낮추지 않았다. 한국 경제가 흔들림 없는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의 금융·외환시장은 물론 주변국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일종의 '내성'이 생긴 것도 국가신용등급 유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피치는 이날 낸 평가보고서에서 '북한의 위협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등락을 반복하는 예전과 유사한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말까지 1140원대에서 움직이다가 이달 들어 추석 연휴가 끝나고 1130원대로 내려왔다. 원화값이 오히려 비싸졌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외부 위협에도 안정감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금도 8~9월에는 매도세가 있었지만 이달로 넘어오면서 지난 10~11일 1조6000억원 순매수로 전환했다.
200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던 당시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또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당시 한국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positiv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두 단계 떨어뜨렸다. 그 여파는 당장 외환시장에 불어닥쳤다. 무디스 등급 전망 발표가 있던 같은 해 2월 11일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보다 16.9원(1.42%) 내린 1209.2원에 마감했다. 북한 리스크가 계속 이어지면서 같은 해 3월 31일에는 1254.6원까지 추락했다.
금융시장의 외국인 투자자금도 요동쳤다. 외국인들은 1~4월에 2조7000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코스피지수는 2003년 1~5월 200포인트 이상 폭락했다. 여기에 내수 위축까지 겹치면서 그해 경제성장률은 급격히 가라앉았다.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정부는 반기문 당시 대통령 외교보좌관과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을 미국 무디스 본사로 급히 파견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북한의 잇따른 군사 도발로 시장의 위기감은 한껏 고조됐다.
이에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19~21일 문재인 대통령 방미 때, 뉴욕의 무디스, S&P 본사를 찾아 국제 투자자 안심시키기에 나섰다. 경제부총리가 국제 신용평가사 본사를 방문한 것은 2004년 이헌재 부총리 시절 이후 13년 만이었다. 경제팀이 현재 상황을 국가 신용도가 강등될 수 있는 위기 국면으로 보고 선제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했는데도 한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크게 반영돼 등급 전망에도 변동이 없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이번 신용등급 방어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다. 피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당선됨으로써 장기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혀 내수 성장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며 탄핵 정국을 무사히 빠져나온 것을 내수에 호재로 봤다.
또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인 고용 창출과 소득주도성장 역시 내수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투명성을 제고하고 정경분리, 기업 지배구조개선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는 데 대해 광범위한 국정 운영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도 더욱 발전하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도 피치의 분석과 같은 맥락으로 평가를 내렸다. 애덤 포센 PIIE 소장은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정책 전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한국의 거시적인 펀더멘털도 튼튼하기 때문에 대외 리스크에 충분히 대응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에 "최근 대북 리스크에 관해 한국 경제의 견조한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그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제적인 긍정 평가에 한시름 놓으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가신용등급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 금방 변하기 때문에 안보 상황이 악화되면 신용등급이 대번에 내려갈 수 있고 그러면 자본 유출, 외환 부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김세웅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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